 | 정년에 관한 설문(특집 1회 기사 참조) 결과에 의하면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평생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디자이너가 창작을 원천으로 하는 직업인 만큼 정년이나 은퇴의 개념은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타 직종보다 실무에 종사하는 기간을 더 짧게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평생디자이너에 대한 화두는 이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발산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웹, 그래픽/편집, 인더스트리얼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세 명의 7~10년차 디자이너와 함께 ‘평생디자이너’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에이전시, 매체/출판, 대기업 등 근무환경도 각기 다른 이 세 디자이너는 그 간의 시행착오와 직∙간접적 경험으로 축적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척박한 국내 디자인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그 안에서 현실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위기 극복법과 평생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방법론을 함께 찾아보고자 했던, 그 대담의 내용을 중계한다.
취재ㅣ김유진 객원기자 (acidncool@dreamwiz.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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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디자이너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앞서 먼저 평생디자이너라는 개념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봤다.
김동규: 사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이 모두 디자인이다. 광의의 의미에서는 누구나 평생디자이너다. 그러나 직업에 포커스를 맞추었을 때, 나 역시 많이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열정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인지, 업으로서의 디자이너가 될 것인지.
강성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것에서 매우 자유롭다. 이런 현상이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을 더 좋게 변화시키는 것 같다. 디자인이라는 작업이 자신만의 개성과 색깔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길게 보기 시작하는 것도 같고.
윤태원: 나는 전공시간에 한번쯤은 마주해봤을 질문부터 얘기하고 싶다. ‘디자인은 예술인가?’ 이 질문에 대해 디자인이나, 그 외 다른 분야라도 상위 1%의 것은 예술이라고 보면 답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마이클 조단의 환상적인 덩크슛을 보고 단순히 스포츠라기 보다는 또하나의 예술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정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이 예술로 받아들여졌을 때 기본적으로 정년이 연장되는 것이고, 평생디자이너의 개념이 생겨나는 지점 같다고 본다.
김동규: 기업에 속한 디자이너는, 디자인 대해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 소비자와 기업에 보탬이 되는 디자인을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넓게는 사용자와 소비자, 기업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가, 자문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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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 설문 결과 10년차 이상이면 일반적으로 창작력 뿐만 아니라 체력 등 많은 부분에서 디자이너의 에너지가 과대하게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디자이너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슬럼프나 매너리즘, 권태 등은 수시로 찾아온다. 평생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기적인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다음을 위한 정진, 이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대담에 참여한 세 명의 디자이너에게 이와 관련하여 어떤 경우에 디자이너로서 위기를 겪었고, 또 어떤 방법들로 극복했는지 들어봤다.
강성규: 웹 분야의 경우는 항상 변화도 빠르고, 그때 그때마다 스킬 등을 빨리 습득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것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다. 빨리 배우고 나면 또 그 다음에는 뭘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경우도 많고. 모션을 만들어도 ‘너는 항상 느낌이 똑같냐’ 이런 말 들으면 힘들다.
윤태원: 고정된 매체 작업보다는 클라이언트 잡을 많이 하면 의외로 권태에 덜 빠지는 것 같다. 워낙 다양하고 희한하거나 새로운 요구들이 많으니 안주할 수가 없다.
김동규: 디자이너는 창의적인 업이지만, 어딘가에 소속되면서 부터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 초기에는 정해진 방향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지만, 그 기간이 지나고 본인이 방향조차 결정해야 할 기회가 주어질 때는 막상 어려워진다. 또한 디자인 분야에서는 이성과 감성, 기술, 가격을 상대로한 설득의 과정도 중요한데, 이때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할만한 논리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큰 딜레마에 빠진다.
강성규: 그래도 참 신입의 경우에는 빨리 일을 배우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지 않나. 그 친구들이랑 같이 2~3주 일하다 보면 나 역시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매너리즘이나 권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때 내 모습도 생각나고.
김동규: 동의한다. 처음 시작하는 디자이너의 열정은 무척 자극이 된다.
강성규: 다른 분야랑은 좀 다른 얘기를 하자면, 웹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밀사항이 아니더라도 쑥스럽거나, 자존심 때문에 작업의 소스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소스를 공개하는 편이다. 작업의 한계를 보여야, 다른 사람들에게 질타도 받고 그걸로 배우는 것이 아닌가. 또 웹의 장점은 수십만명이 닉네임 하나로도 ‘~님’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를 충분히 활용해서 정보도 얻고, 다양한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윤태원: 또 본업과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참 좋은 자극이 된다. 운 좋게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니까 참 신선하더라. 그래픽/편집 분야의 일을 하지만, 제품디자인 쪽에 연계된 일도 있었고, 전에 있던 디자인 회사에서는 국내/해외 전시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전시할 때 가장 큰 쾌감은 주변인에서 중심이 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또 책을 보는 것이나 음악 등 일상 속의 다른 활동들도 의외로 새로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극제로서 효과가 크다.
김동규: 선망했던 일이 항상 접하게 되는 업이 되어버리면,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 만큼 열정을 느끼지 못할때가 있다. 나의 경우 우연한 기회에 과의 활동 같은 기분으로 다양한 분들과 스토리 텔러를 시작 하였고, 그때의 신선한 자극이 지금의 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두 분의 얘기랑 비슷한 맥락에서, 타 분야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에서 새로운 자극을 얻는다. 스토리텔러와 함께 도쿄의 100% 디자인전, 밀란 페어,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등의 전시를 통해 새로운 열정도 살아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신선한 감성과 열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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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 수년간의 세월을 디자이너로서 이어가는 길,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대한 단기적인 돌파구 이외에 평생디자이너로 가는 계획은 보다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7~10년차의 세 디자이너가 말하는 평생디자이너의 방법들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으로 인정 받기 어려운 우리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모색해 본 것이다. 정답을 내놓겠다거나 특별한 노하우를 제시한다는 거창한 의도가 아닌, 함께 생각보자는 차원이다.
윤태원: 평생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은 두 경우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현업에 손을 놓지 않는 분들과, 생활을 위한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도 끊임없이 디자이너의 길을 가는 경우다. 앞서 말씀하신대로 현실도 받쳐줘야 한다. 일본에 아오야마나 다이칸야마에 가면 참 재미있게 돈을 벌면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대에도 그런 곳들이 꽤 있고. 그걸 보면서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화를 파는거다. 상품을 팔 수도, 커피를 팔 수도, 디자인을 팔 수도 있는데, 문화를 파는 대안적인 공간이 많이 생겨나면 시장 자체도 형성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커피를 판다고 하면, 커피를 맛있게 파는 것이 있고, 커피를 예쁘게 파는 것이 있지 않나. 나는 후자의 경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크건 작건 문화적으로 멀티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디자인적인 영역도 새롭게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김동규: 디자이너에게 관찰은 중요한 역할이다. 관찰을 통해 디자이너는 선행하여 제시하고 실패하여 더 나은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다른 영역과의 만남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디자인과 더불어 다른분야와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디자인 관심을 기울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진화하지 않는 종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로서 계속 진화 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또한 새로운 영역에 눈을 떠서 디자인을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강성규: 평생디자이너가 되려면, 디자이너들도 팬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는 것들을 봐주고, 기억해주는 팬들 있다면 더 오래 가지 않을까. 내 작업에 공감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도 찾아서 만나고, 또 그분들과의 교감을 통해 또 성장한다면, 나 작업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디자이너라는 끈을 연장할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다.
김동규: 동감한다. 맞는 말씀이다.
윤태원: 팬 말씀에 나 역시 크게 동감을 한다. 근데 다른 방법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사실 지금 디자인 업무를 하면서 팬을 만들기 힘들다. 디자인 크레딧만 봐도 그렇다. 어느 회사의 디자인인지 알 수 있어도 누구의 디자인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제반 환경을 만드는데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도 클 것 같다. 스타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역량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디자이너를 노출시킨다면, 이직할 때도 단순히 연봉만이 고려대상이 아니라 내 팬을 만들기 위한 점이나, 내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한 부분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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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 평생디자이너를 꿈꾸는 미래는 그저 장밋빛만은 아니다. 대담을 통해서 언급되었듯 디자이너가 보다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선행되어야 하고, 기업이나 언론 등 타 분야의 지원도 필요하다. 디자인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뿐만 아니라 경영학 등 유관분야를 공부하는 방법도 평생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중요한 플랜 중 하나다.
디자인 작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멀티 문화 공간’에 대한 꿈도 평생디자이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예로 꼽았다. 무엇보다 평생디자이너에 장기적으로 동기를 부여할 동력은 세 디자이너가 모두 공감한대로, ‘팬을 만드는 것’, ‘스타 디자이너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로 하여금 크리에이티브를 발산하는 환경과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이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논의들은 평생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이를 참고하고 구체적으로 생각을 확장시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또 디자이너 각자의 몫이다. 평생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신념이 극히 일부분의 성공사례로 국한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디자이너가 속해있는 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디자이너 역시 사회를 바꾸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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