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평생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난 정년에 대한 설문 결과에도 나타났듯이 많은 디자이너들이 ‘평생디자이너’를 꿈꾸고 있고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평생디자이너 되기 제3회 특집에서는 평생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이 시대의 노장이라 불리는 디자이너 3인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에 대해 물었다. 편집, 패키지, CI디자인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들은 디자인이 지금처럼 전도유망한 길로 부각되지 않았던 때부터 우리나라 디자인계를 개척했기에 그 길이 더욱 고단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가야 할 내일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취재ㅣ권연화 기자 (yhkwon@jungle.co.kr)
I&I의 서기흔 대표는 존경 받는 교육자이자, 우리나라 편집 디자인계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이며,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장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바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정은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을 만들고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Jungle : 정글과의 예전 인터뷰에서 디자이너는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교육과 함께 현업에서 디자인을 계속 하고 있으신데 어려움은 없나.
서기흔 대표 : 나는 ‘현장성’에 소신을 갖고 있다. 디자인, 그리고 디자이너의 위상은 바로 ‘현장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디자인 학과가 갑자기 많이 생겼다. 능력 있는 선배들이 학교로 가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현장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알리고 디자이너들의 영역 확장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좋은 디자인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학교의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때도 열정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열중하다 보니 그것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힘들지만 어떤 일이든 즐겁게 열정을 갖고 한다.

Jungle : 예전에 비해 지금은 사회적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이나 디자이너의 영역이 많이 넓어졌다.
서기흔 : 어떻게 보면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을 아트디렉터 1세대라 할 수 있다. 아트디렉터 1세대로써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은 기획, 편집쪽과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매커니즘을 비롯한 잡다한 지식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설득시키는 논리도 갖고 있어야 한다. 기획, 편집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 단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또 다른 영역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제는 개인의 능력과 실천의 문제지, 사회인식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 시점에서는 좀 더 그것을 뛰어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이제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시대이다. 예를 들면 크로스오버, 탈경계와 같이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Jungle : 아트디렉터 1세대로 없는 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만들어진 길을 가고 있는 지금 후배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서기흔 : 출판 ∙ 편집 디자인쪽을 보면 아트디렉션의 선도적이고 도전적인 시대정신이 초창기에 비해 외려 없어졌다. 예전보다 주도적인 역할도 이슈도 없다. 그래서 아트디렉터나 디자이너의 위상이 더 내려가는 것 같다. 그때는 존중을 받으면서 일했다. 일을 하다 보면 갈등이 있기 마련이고, 말이 안되는 경우에는 가르치고 설득했다. 지금은 디자이너들이 전부 끌려 다니는 것 같다. 비슷한 디자인 회사들이 워낙 경쟁을 많이 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가끔씩 경력 있는 제자들이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의 현실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
Jungle : 그렇다면 평생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언을 주신다면?
서기흔 :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겠지만 나 또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의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돈이 되는 것이든 디자인계를 위한 것이든 자기 스스로의 발전에 대한 것이든 평생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생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새로움에 대한 본능이고, 또 다르게는 고통이다. 창조의 고통으로 자아를 완성해나간다고 해석해도 될 것이다. 그것을 통해 거꾸로 비즈니스나 디자인계, 사회로 다시 환원될 것이다. 이런 순환구조를 가져야 발전이 있고 그것이 평생디자이너의 참모습이라 생각한다.
평생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심플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히 하고,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경력도 있어야 한다. 그저 나이를 먹고 이것저것 경험했다는 경력이 아니다. 경력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가치인 관계, 인적 네트워크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가능성이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떤 동기부여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난 학생들에게도 “학생은 훌륭하다”는 명제를 갖고 수업을 시작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잘 만들어가면 상상 이상의 능력이 나온다. 디자인에는 수많은 장르가 있다. 그 한정된 장르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다양한 접점을 스스로 찾아서 새로운 디자인 분야를 발굴해야 한다. 디자인 문화 비즈니스가 바로 그것이다. 보통 독립이라 하면 디자인회사를 차리는 것을 떠올리는데 그런 1차원적인 것 말고, 훨씬 더 다양한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다양성의 시대이다.

Jungle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서기흔 : 제주도에 개 박물관을 4년째 준비하고 있다. 콘텐츠가 어마어마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야말로 디자이너들만이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문화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상상력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즉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힘들지만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한국패키지협회 이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패키지 디자인 CD’s의 대표로 디자인활동을 하고 있는 이영희 대표는 자신을 경영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느 정도의 경력이 쌓이면 관리자, 경영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Jungle : 다른 분야와 다르게 디자인은 창작활동이고 다른 여러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인지 설문결과, ‘디자이너들에게 정년이나 은퇴는 없다’라는 쪽의 의견이 더 많았다. 이런 설문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영희 : 서양의 유명 디자이너들, 아니 이웃 나라인 일본만 보아도 고희에 가까운 디자이너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조로현상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교육을 받고 졸업해서 실무에서 평균적으로 20년 정도 일을 한다. 20년이란 시간이 길 수도 있지만, 또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을 갖고 디자인을 했다면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더 깊고 완숙한 디자인의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은 디자인의 맛을 알 때쯤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한계를 정해버린다.

Jungle : 디자이너 본인이 디자인에서 손을 떼기 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몰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그동안 사회적인 제약을 경험하셨는지?
이영희 : 평생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픈 마음은 모든 디자이너의 염원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든 디자이너를 대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과연 저 나이에 디자인을 논의 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람들의 닫혀진 사고일 뿐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좋은 경험과 사고를 통한 완숙함을 디자인에서 무시할 수 없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 보면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남이 바로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아닐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리번거림, 도전정신과 무모함, 과거보다 미래의 꿈이 많은 내일을 기다리는 태도가 바로 디자이너로써 평생을 살아가기 힘든 사회적인 제약을 깨는 방법일 것이다.
Jungle : 그런 모든 사회적인 제약이나 한계를 넘어 오랜 생명력을 지닌 디자이너가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이영희 : 왕성한 호기심과 사고가 바로 해답이 될 것이다. 호기심이 없다면 그만큼 열정이 줄어들고, 열정이 줄어들면 사고력도 약해진다. 더불어 아이디어의 발상과 전개의 자유스러움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어떤 틀에 가두어두지 않고 열린 사고를 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예지력, 직관력이 갖추어진 유능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될 수 있다. 새로움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국내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이끈 디자인파크 커뮤니케이션즈의 김현 대표는 대우그룹 디자인실에 근무하다 88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로 주목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고 자신의 회사를 창립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 크리에이티브를 업으로 삼고 있는 디자인파크의 김현 대표에게 평생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는 비결을 들어보았다.
Jungle : 디자이너로 우리나라에서 장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김 현 : 안타깝게도 디자인계는 수명이 짧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외국은 노장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디자인계의 수명이 짧은 편이었는데 IMF 이후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경력이 많은 디자이너는 돈을 많이 줘야 한다는 이유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우리나라 디자인은 역사가 짧고, 디자인은 젊은 비즈니스라는 편견이 있다. 디자인 역사가 긴 서구의 경우 디자인계에 다양한 연령대가 존재한다. 노장 디자이너의 작품은 디자인을 넘어 예술이라 생각해주는 풍토가 있다. 또 우리나라는 경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주로 하기 보다는 관리쪽의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안타깝다.

Jungle : 순수 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있고, 조직 안에서 관리나 경영쪽을 하는 사람, 자신의 이름을 건 디자인 회사를 차리는 사람, 예술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 등 디자이너의 길이 나눠지는 것 같다.
김 현 :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에 더 잘 맞을까’이다. 나의 성향과 재주가 어느 쪽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반드시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해서 디자인 회사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것은 다른 비즈니스 분야로 전향을 해도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디자인계에서 배출되는 인력이 너무 많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조건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어떤 시장이든 어렵긴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차피 다 어렵다면 내가 했을 때 즐거운 일을 해야 평생 할 수 있다. 나에게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Jungle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김 현 : 개인 작품활동 하고픈 마음이 항상 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비즈니스를 하면 항상 클라이언트가 있다. 물론 내 의견도 중요하지만 일단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맞춰줘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뜻과 다를 수 있다. 이런 작업이 오래되니, 어떤 것과도 상관없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곧 실현하고 싶다.
예전에는 전시회에 출품을 많이 했었다. 주로 일관되게 쭉 해왔던 작품은 한국의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내 나름대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물론 예전에도 시도는 많이 했었지만, 공부하는 과정이라 생각을 한다. 앞으로 더 새로운 나만의 방법을 찾아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 누군가 시킨 일이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클라이언트인 작품을 조만간 할 계획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노장’을 넘어 ‘거장’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고 열정이 있었다. 평생디자이너의 가장 기본은 바로 하고자 하는 ‘열정’에 있지 않을까 싶다. 열정은 머리를 깨어있게 하고 스스로를 발전하게 한다. 열정은 방법을 만들고 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07/08/30 09:29 2007/08/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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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에 적힌 ‘SK 커뮤니케이션즈 UI 디자인실 이사’라는 직함만 보고선 이 사람을 이달의 스페셜 인물로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를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나라 디자인계 최초의 억대 연봉자라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그는 유머러스하고 박식한데다 말주변도 좋아 학교에선 강의까지 잘한다고 소문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잘생겼다. 그에 대해 미처 알기도 전에 아, 질투난다. 하지만 이 남자가 궁금하다. 한명수.

취재 | 서은주 기자 (ejseo@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누군가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 그의 개인 홈페이지를 훔쳐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일찌감치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 재능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즐겁게 풀고자 노력한 탓에 그는 오늘날 이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디자인을 보고 “심플하고 밝고 명쾌하다”고 말한다.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이 있을쏘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밤낮없이 곰처럼 묵묵히 일만 하지는 않는다. 사물과 현상을 특별하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일하는 것이 그들의 성공 비결이다. 한명수 이사는 하다못해 말단 디자이너에게까지 허투루 메일을 보내는 법이 없다. 단체 메일 서비스라는 좋은 시스템을 놔두고 그가 굳이 수 십 명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는 데에는 그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주기 때문.
“유학은 어디로 다녀오셨어요? 그간 어디에서 근무하셨죠?” “유학은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웹진 스펀지를 시작으로 FID, 이노이즈 인터랙티브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 한명수 이사가 이곳, 대기업으로 적을 옮긴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다. 대기업 이사쯤 되면 유학은 기본이요, MBA나 기타 유수의 대기업에서 몸을 담았던 이력들이 줄줄 쏟아져 나와야 하건만 이건 순수 토종인데다 직원 수 1백 명 남짓한 작은 규모의 회사들의 이름을 대니 상상만 해도 이 뻘쭘(!)한 상황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진다. 하지만 한명수 이사는 SK커뮤니케이션 측의 삼고초려 끝에 스카우트되어 온 인재 중 인재이다.
“그간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만 근무해온 탓에 대기업의 특성이나 직위 체계 등을 몸에 익히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SK커뮤니케이션에 온지는 이제 6개월 남짓 되었네요. 여기서 싸이월드, 네이트, 엠파스, 통 등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동안 특히 싸이월드 디자인 개편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개편에 맞춰 싸이월드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브랜드이미지도 바꿨지요. 또 동영상 서비스와 포털사이트인 엠파스와 연동시킴으로써 검색 기능도 강화시켰습니다.”
1천7백만 명의 가입자 수를 자랑하는 전 국민의 사이트 싸이월드의 디자인을 새롭게 바꾼 이가 바로 한명수 이사다. 오랜 기간 동안 변화가 거의 없었던 사이트이다 보니 새 디자인을 두고 누리꾼들의 설왕설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 해도 오랜 시간 내 몸에 익숙해진 것만큼 좋고 편한 것이 또 있으랴. 사실 ‘몇 월 몇 일 사이트 개편합니다’라는 공고 문구만큼 두려운 것이 또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손이 먼저 가는 익숙함을 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라니. 때문에 한명수 이사는 변화무쌍하게 나날이 성장하는 이 생명체와 같은 싸이월드의 디자인을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시나브로 바꿀 생각이다. 익숙함과 변화 그리고 새로움 속에서 계속 진화하는 싸이월드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한명수 이사의 사무실은 여느 대기업 이사의 사무실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스피커를 통해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흐르고, 사방에는 시안 작업한 디자인물들이 벽에 붙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하나의 시안이 완성되면 벽에 붙여놓고 며칠간 보고 또 봐요. 그래도 질리지 않고, 생명력이 느껴진다면 그때 비로소 여러 사람들에게 내보이죠. 싸이월드뿐 아니라 제 개인작업 또한 마찬가지예요. 좋으면 좋을수록 아끼고 묵혀 놓은 뒤 완전히 삭을 때 즈음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개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자인이 제품을 잘 포장해주는 소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아요. 때문에 디자인의 생명력을 최대한 늘일 수 있도록 노력하죠.”
한명수 이사의 지금 최대 관심사는 싸이월드, 네이트, 엠파스 등을 하나의 브랜드로 잘 포장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이들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지만 브랜드 충성도는 그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한명수 이사의 생각이다. 또 이들 서비스마다 연관성이 부족하여 공동 브랜딩 작업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이외에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남은 과제가 있다. 후배 디자이너들이 현재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지 관심 갖는 것. 한명수 이사는 경영인이자 디렉터이기 전에 그 자신 또한 한 사람의 디자이너이다. 때문에 후배 디자이너들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생각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기업 이사이자 디자이너로 매일매일 머릿속이 복잡할 것 같지만 그는 “모든 상황은 복잡하다. 하지만 결과는 심플해야 좋다. 복잡함을 사랑해야 심플하고 명쾌한 해답이 나온다.”라고 말한다.
한명수 이사의 꿈은 보수 좋은 대기업도 디자인 연구소도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서건 좋은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흡수력이 빨라야 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그 다음 전천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좋은 아웃풋(output)이 나온다. 여기에 트렌드와 디자이너만의 색깔이 적절히 뒤섞여 묻어나야 비로소 좋은 디자인이 완성된다.
한명수 이사는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저 옛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일 뿐. 그래서 그는 케케묵은 디자인 서적과 역사책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발 빠르게 트렌드를 전해주는 세상의 모든 잡지와 장난감 등 시각적으로 자극받을 수 있는 이 모든 것 또한 새로운 발상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자주 부딪히고 깨지면서 디자이너는 앞으로 진보한다. 하나의 명제가 만들어지면 이를 곧바로 깨는 것이야 말로 디자이너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그동안 수없이 거쳐 왔기에 오늘날의 한명수 이사가 있는 게 아닐까. 하루가 머다 하고 트렌드가 바뀌는 이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풀이 꺾여버리는 게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처한 상황이지만 축적된 과거 지식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으로 고금을 아우르며 우리나라 디자인계를 이끌고 있는 한명수 이사. 그가 있기에 우리 시야는 그저 밝기만 하다.

http://magazine.jungle.co.kr/junglespecial/Rookie_designer/content.asp?idx=83&table=designsuccess
2007/06/22 00:58 2007/06/2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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